IT개발자로 일하다 보면 황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을 가끔보게된다.
7,8년 전쯤 한 거래처가 그랬다.
당시나는 전자칠판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있었다.
개발하려고 하던것도 아니었고 거래처에서 요구를 하니 어찌어찌 하다 그리됐다.
A(기획), B(하드웨어), C(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3사가 있었다. 내가 속해있던 업체는 C였고
B가 대형터치스크린 센서를 개발하고있었고 대기업쪽에 납품을 노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를 본 A업체 사장이 오랬동안 사교육시장에 종사했던 경험으로
대형 터치스크린을 활용하여 전자칠판 사업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애석하게도 A,B,C는 어느정도 관계가 있는 회사였다.
A는 B와 C를 활용하면 괜찮은 사업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A의 초기기획안은 내가봐도 그럴듯 했다. 초반엔 그럴듯했었다...
A가 처음에 C에 요구한 것은 하드웨어는 거의 완성됐으니 적용할만한 소프트웨어를 소개해달란 거다.
A가 제시한 금액이 너무 낮았기에 이에 응할 수 있는 업체가 거의 없었고
기획단계에서 A는 다양한 기능이 필요치 않은 번들수준의 S/W를 제공하여 박리다매로 팔겠다는 생각이었다.
해당금액에 응할 수 있는 업체가 없어서 그냥 내가있던 C에서 직접개발하기로 했다.
간단한 그림판을 대충 급조해서 만든 시제품을 가져갔더니 A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수준 높고 검증된 소프트 웨어를 원한다."는게 그이유였다.
막 삽을 뜬 소프트웨어가 어찌그리 될수있겠냐만 A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만들던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프리랜서에게 웃돈을 얹어 주고 솔루션을 사왔다. 제법괜찮은 제품을 사왔고 A도 만족한 눈치였다.
문제는 그때부터 A의 눈높이가 너무 올라갔다는 거다.
이런저런 기능을 추가해달라고 계속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를 다 쳐내지도 못했고
결정적으로 기술적으로 타당한지에 대한 검토가 전혀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기획을 해갔다.
일정이나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순수하게 그런 기능이 구현가능한지에 대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기획하고 일정을 잡아서 C에게 통보를 해댄다.
어디까지나 본인들이 甲이라 생각해서 그랬지 싶은데 곰곰히 생각하니 이게 뭐하는 짓인지 싶었다.
사업의 핵심솔루션을 직접개발하는 입장도 아닌 자들이 솔루션을 휘두르려하고있고 결정적으로 C가 개발하는 소프트웨어의
소유권마저 가져가고 싶어했다. (A에게 받기로 한돈보다 프리랜서에게 준돈이 더많았고 그마저도 다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몇가지 기술적으로 무리한 요구들이 모이니 도저히 감당이 안 됐다.
기술적으로 무리한 요구 몇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그당시만해도 WinXP에서 Win7으로 갈아타던 시절이라 시중에 XP사용자가 많았으므로 XP에서도 동일한 서비스가 제공되야 한다는 이유로
WinXP에 멀티터치를 지원하게 해달라고 한다.
=> 이건 거의 윈도우 API를 개발하는 수준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이런 개발을 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할생각도 없고
2. 당시 인지도있던 마인드맵 프리웨어의 기능이 마음에 든다고 우리가 개발중인 제품에 기능을 탑재하겠다고 요구한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하니
DLL파일 몇개 복사하면 다되는거 아니냐고 하더라.
=>내가 A사장에게 한마디했다. "일이 그렇게 쉽게 되는 거면 나같은 사람은 필요가 없는 거다."
3. 전자칠판에 그림이나 글을 쓰다가 면적이 넓은 물건이 칠판에 올라가면 지우개모드로 동작하게 해달라고 요구를 했다.
=>하드웨어에서 이게 인식가능한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결정적으로 저시점에 H/W 샘플을 받지 못해서 없어서 검토조차 못했다.
이쯤되니 A가 요구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A와 계속일을 하는 것이 단순히 스트레스의 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의 문제는 H/W, S/W에 대한 일절의 기술적 이해가 없이 일방적으로 기획을 했다는 것이다.
그 중간에 숨어있던 비용적 시간적 윤리적 문제조차 차치하고 기본적으로 본인들이 작업하는 결과물의 가능여부를 이해하지 못했다.
기술적으로 전혀 검토되지 않은 기능을 제품 홍보물에 올렸고 소비자들에게 시연을 하기 위한 일정을 지속적으로 어겼다.
적어도 최초 기획했던 번들수준은 애초에 완성되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쓸데없이 경쟁제품들의 완성도에 집착하여
본제품의 출시조차 하지 못하고 사업을 말아먹었다.
게다가 처음 계획보다 시간이 무기한 늘어났다. 들어오는 비용도 없이 얼마돼지도 않은 초기비용으로 개발사(C)를 옭아매고있었고
A는 본인들이 甲인줄 알고 끝까지 휘두르려 했다. 내입장에서 얼토당토않은 기획안은 쳐내야 했지만 C의 사장은 왠만해서는 수용하려는 태도였고
시간적으로 비용적으로 그리고 실현가능성 면에서 엉망인 상태였으므로 위험하기 그지없는 상태를 회피하기 위해 나는 C를 퇴사했다.
퇴사한 이후에 시간이 흘러 C도 A와 사업을 정리했고 A는 다른 프리랜서 개발자를 섭외해서 개발을 지속했다고 한다.
몇년을 전자칠판 사업에 매달려있었는데 그후 종종 들리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전히 기술적인 이해 자체를 하지 않고있었다.
당연하게도 그회사는 망했다.
얼토당토 않은 요구사항을 늘어놓던 A사장에게 내가 해줬던 이야기가 있다.
A : "이런저런 (무리한) 기능 구현을 왜 못하냐?"
나 : "그런거 할줄 알면 내가 여기 왜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