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무어라 말하기 애매한 죽음입니다.


3년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저에게 전화가 옵니다.


"어머니가 아프다. 약값이 부족하다. 20만원만 빌려달라"는 친구의 전화였습니다.


일주일이면 돌려준다던 그의 약속은 일주일이 훌쩍지나 3년이 지난 오늘까지 감감 무소식입니다.


돈을 빌려주고 몇달있다가 다른친구에게 그녀석이 사설토토에 빠져있었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설마 저에게까지 전화해서 돈을 빌릴줄은 몰라서 미처 얘길 못했다더군요.


저에게 20을 빌렸지만 아마도 주변의 지인들에게 최대한 박박긁어 갔겠지요.


처음엔 괘씸했습니다. 당연히 화가 났고요. 그렇게 1년 2년쯤 지나니 


화해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생사는 알고지내야 되지 않나싶었지만 그녀석의 소식을 알수가 없었습니다.


어제 퇴근하는길에 다른 친구한태 전화가 왔습니다.


그녀석이 실은 3년전에 이미 세상을 등졌다고 합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녀석의 또다른 친구가 너무소식이 안들려서 부모님께 찾아 갔더니 어렵게 말씀을 해주셨다고 하더군요.


녀석의 부친께서 소식을 전해듣고 부랴부랴 녀석이 지내던 곳으로 내려갔더니


녀석의 자취방은 세간살이 하나 없이 이미 깔끔하게 정리가 돼있었고 


약을 먹고 그렇게 떠났다 합니다.


그소식을 들으니 참 씁쓸합니다. 


벌컥 욕지거리가 먼저나왔습니다.


"등신같은게 그래도 살아야지..."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용서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리라 생각해본적도 없었으니까요.


차라리 감옥에 다녀올지언정 


그래도 살아있으면 언젠가는 좋은날 올텐데...


효자라던 녀석이 부모님이 시신을 수습하게 만들었습니다.


부모님은 아직까지 칩거중이시라 하시니 충격, 아니 상처가 크시겠지요.


참 나쁜놈입니다.




그래서 오늘 친구와 한잔하고 내일 녀석의 묘를 찾아가볼까합니다.

반응형

저희 아버지를 제발 죽여주세요 


먼저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자극적인 제목을 선정한 점 사과드립니다. 


제 청원은 우리나라도 안락사가 시행되어서 많은 분들이 저와 저의 아버지 같은 고통을 겪지 않게 하는 것 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2017년 7월 췌장암 3기를 판정 받으시고 2018년 5월까지 항암치료를 하셨습니다. 


암중에 가장 생존율이 낮은 췌장암 이었지만 저희가족과 아버지는 희망을 놓지않았습니다. 


17년도에는 혼자 생활 할 수 있는 정도의 상태이셨습니다. 산책도하고 친구분들도 만나셨습니다. 


하지만 18년도에 들어서며 점점 일상생활을 혼자하기 힘들어지시고 


5월달부터는 이미 췌장암은 말기로 진행되었고, 6월엔 근처 장기로 암 전이, 7월 현재는 혈관을 통해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있습니다. 


현재는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대 소변을 가리지 못하시고 말도 못하십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수면제와 진통제에 의지해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하루 24시간중에 눈뜬 시간은 1분 남짓이고 그저 잠결에 고통스러운 신음만 뱉으십니다. 


일주일 전 겨우겨우 한마디, 손을 움직이는 정도 하실 수 있는 상태이신 아버지가 


새벽에 핸드폰으로 검색하시는 내용을 봤습니다. 


우리나라도 안락사가 가능한지 찾아보시고 있으셨고 저에게 너무 힘들다고 


그냥 이제 죽고싶다고 신음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안락사 찬반 쟁점에 관해 많이 알아보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무분별한 안락사 시행은 물론 절대안될 일입니다. 


하지만 말기암 환자, 온몸에 암세포 전이 더 이상 회생할 수 없는 환자에 대해서 


제한적으로 시행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금 새벽 한시 병실에서 고통스러워 하시고 계시는 아버지 앞에서 글을 적고 있습니다. 


이 청원이 통과된다고 해도 이미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난 뒤일겁니다. 


상상하기 싫지만 누군가의 어머니 그리고 친척, 친구들이 이런 상황이 오지 않을거라는 확신은 


다들 할 수 없을겁니다. 


가능성이 없는 병실 침대위에서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다 죽는 것 보다 


편안하게 가족모두가 모여 인사하고 인생을 정리 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고통스러워 하는 아버지 옆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것 뿐 입니다. 


본인의 가족이 고통스러워 지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에 동참해주세요. 


######################################################

이와 관련됀 어떤이의 댓글

"의견이 다 다른데 이거 하나는 확실함 안락사에 반대하는 놈들은 

적어도 산 자가 죽은 자를 질투할 정도의 고통을 겪는 중이 아니라는 거지"

반응형

이란출신 소년이 난민신청을 했습니다.

난민신청 사유는 소년이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고국으로 귀국시 개종을 허용치 않는 이슬람의 율법에 따라 소년의 목숨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를 접하며 황당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어느 무식한 종교인이 소년의 목숨이 위험한지 모르고 저 하고 싶은 짓만 했구나."

사실 저는 기독교 정확히는 개신교인들의 심리를 잘압니다.

무조건 전파하고 퍼트리고 자신들의 사상을 물들이는데 주저함이 없으며 이는 그들의 최고의 덕목입니다.

이교도를 자신들의 사상으로 물들였을때 그들의 기분이 어땠을지 안봐도 훤합니다.


제일큰 문제는 소년이 목숨을 담보로 종교를 바꿔야 했다는 점입니다.

소년이 한국에 지속적으로 체류활 수 있다면 문제가 전혀 되지 않으나 어쨌든 고국으로 돌아가야하는 입장인데

아무런 고민없이 선교를 했다는 점입니다. 

만약 불행하게도 난민인정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또 고국으로 귀국해야만 한다면

이에대한 책임을 누가 질 수 있을까요...


이제와서 난민 지위를 달라고 하는건 사실 떼를 쓰는겁니다.

종교때문에 귀국하면 죽으니 난민으로 인정해달라고 종교단체에서 떼를 쓰고 있습니다.

네, 소년은 당연히 난민으로 인정받아야합니다. 우리사회의 누군가가 저지른 행위의 댓가를 우리가 

치뤄야만 합니다.

소년의 목숨은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겠지만

일부 종교인들의 행위로 인해 이런 사건이 벌어지게 됐다는 점은 굉장히 불쾌하기 그지없습니다.


한편 열받는 것은 행위는 특정 집단이 저지르고 책임은 우리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져야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런사건이 반복될 것 이고요.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 저는 소년이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밝히는 문제의 요점은 난민신청이 아니라 "무분별한 선교활동"에 있습니다.

반응형

오사카성에 올라가서 찍은 배경



오사카에 다녀왔다.

그과정에 오사카성도 구경했다.

나도 오사카성의 사진정도는 봐왔었길래 문화재구경하러 가봤다.


오사카성 관광은 몇가지 점에 있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첫째로 오사카성의 복원상태를 보니 굉장히 이상했다.

오사카성이라고 하니 히데요시의 오사카성이라고 알고있어서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문화재로 생각했다.

오사카서은 그냥 콘크리트 덩어리 였다. 오사카성의 원본이라고 할만한 것이 전혀 남아 있지를 않았다.

물론 목조건물을 수백년동안 원형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세월이 지날 수록 보수의 보수를 거치다보면

과연 이것을 오리지널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나,

오사카성은 이거저거 할것없이 그냥 시멘트로 들이부은 껍데기만 원형의 성과 비슷한 또다른 현대적 건물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오사카 성의 원형에서는 불가능 했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도시의 전망을 구경하는 행위도 

가능했을 것이다.

딱히 우리문화재의 보존상태에 대해서 큰 감흥은 없었는데 오사카성의 보존상태를 보니 우리가 그래도 여기보다는

낫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사카성의 원형이 훼손된 이유는 2차세계대전의 흔적이므로 어찌보면 자업자득이라 할수도 있겠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전쟁으로 훼손된 문화재를 어떻게 복원했을지 상상해본다면 아마도 과거의 건축방식을 참조

해서 원형을 복원하려는 시도를 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MB때 숭례문이 불타고 그복원 과정에 말이 많았던 점도

있기는 하지만 어찌됐든 시늉이라도 했으니까...)


둘째는 오사카성이다보니 히데요시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인데

그의 일대기를 홀로그램 영상으로 층마다 도배를 해놓았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의 일대기에 임진왜란이 빠질 수 없었고...

당연히 그부분을 찾아 보았더니 생각외로 담백하게 임진왜란에 대해서 서술한 한줄의 문장을 찾을 수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요약해 보자면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여 조선의 인민들에게 고통을 주었다."라고 서술돼 있었다.

의외로 재미있는 문구다. 사실 현대의 일본인들이 이사건을 두고 감정적으로 어찌생각할지 알수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미안해 하는 마음을 가지지도 않을 것 이다.


자신들의 대대적인 침략전쟁을 저런형태로 서술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표현이라 생각한다.

다만 오사카성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을 의식한 립서비서적인 표현인지

또 자신들이 침략한 실패한 전쟁을 자세히 서술하기도 민망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진왜란 자체에 대한 서술도 그다지 많지 않고 단편적이어서 내입장에서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오사카성을 보며 느낀 단편적인 나의 생각은 일본의 문화재를 대하는 사상이나 철학이 그다지 대단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오사카성을 방문한 느낌은 그냥 놀이공원이나 박물관을 다녀온 느낌만 들뿐이지

오사카성만의 특별함을 느낄수는 없었다.

일본이 문화와 전통을 중요시 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지 한번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여행이었다.

반응형

개인적으로 타인의 개입없이 스스로 4살부터 24살까지 채식주의를 했다.

물론 혼자서 채식주의를 했기때문에 채식주의 자체에 모순적인 부분도 많았다.

한참후에 채식주의라는게 있다는걸 알았고 채식주의에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는걸 알았다.

어찌됐든 채식주의를 20년정도 유지하는 동안 숫한 조롱을 받았다.

"왜안먹냐"

"이런것도 안먹냐"

"너는 왜그러냐"

이런정도는 비일비재했다.

그게 내가 안먹는거지 타인에게 안먹으라 한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아주 귀찮으리 만치 숱한 질문 공세를 받아왔다.

그래도 그정도는 괜찮았는데 제일 귀찮고 짜증나는 부류의 인간들이 

나에게 고기를 억지로 먹이려고 하는 부류였다.

근본적으로 나와 다르다는 것을 견디지를 못하는 모양이다.

군대가며 채식주의를 포기하고 지금은 고기를 다먹기는 하지만

요즘도 가끔 인터넷에서 채식주의자를 비웃는 글을 가끔본다.


말하는 놈에게는 농담거리이겠지만 이야기의 대상에게는 전혀 그렇지가 않음에도...


그리고 만약에 그 누군가가 타인에게 "너도 채식주의를 해라"고 얘기한다면 

얼마든지 비웃어 줘도 된다.


그리고 내선택에 모순이 있더라도 그냥 덮어둬라. 

일일이 쫓아다 니며 굳이 지적할 필요는 없다.

그 선택이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 

공공의 이익이 해가되는게 아니라면

+ Recent posts